'GDP 5%' 국방비 '유럽 기준'에 맞추라는 美…현실성 있나
전문가들 "단기간 내 5% 증액은 비현실적" 한목소리
"전작권 전환 등 고려 향후 '3% 수준 증액' 불가피" 관측도
- 노민호 기자,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허고운 기자 =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의 감축, 역할 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내용으로, 그 현실성을 두고 엇갈린 의견이 제기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아시아 안보회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도 GDP(국내총생산) 대비 5%의 국방비 지출을 약속했다"라며 중국이나 북한의 위협을 마주한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이 유럽보다 적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한국과 일본을 콕 집어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미 일본이 국방비 증액을 약속한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후 곧 한국에도 같은 취지의 요구와 압박이 올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일본의 경우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2027년까지 방위비(한국의 국방비)를 2배 올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2024 세계 방산시장 연감'을 기준으로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8% 수준(약 66조 원)이다. 이를 미국이 주장한 5%로 올릴 경우, 약 120조 원 이상으로 급상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현행보다 10조 원 이상 올릴 것을 주장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액수다.
미국의 이러한 압박은 국방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진 중인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안보 정책이 '대중 견제'에 집중됨에 따라 미국이 '방패'를 제공하던 동맹국들이 이제 스스로 안보 위협 요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금전적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들에 근본적인 사고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할 안보 리스크의 덩어리가 상당히 커지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제안을 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새 정부의 국방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문제처럼 기존의 협상 틀이 존재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단기간 내에 GDP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5%라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단기간 내에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수치"라며 "나토 국가들도 국방비를 GDP 대비 2%를 아직 못 넘긴 국가가 태반"이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한국은 일단 미국의 이번 헤그세스 연설의 핵심 메시지에 따라 '안보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상징적 행보'와 동시에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한국이 자체적으로 국방 역량을 확충하고 만일 전시작전권이 전환된다면 자연스럽게 국방비가 GDP 대비 3% 이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면 미국에 확장억제를 더 제도화 해줄 것을 요구할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국방비 증액 요구를 '단계적 인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초기부터 거부감을 나타내기보다 일단 협상으로 이어나가면서 상황을 길게 관리하는 전략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우리가 부정적 입장을 취하면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나 전략적 유연성 적용 등으로 우리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합리적인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며 "2030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3%로 인상하겠다는 영국의 제안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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