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 위원회 보고서가 백신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을 부추겨 도마 위에 올랐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보건 의제를 담은 이 보고서는 백신과 만성질환 증가의 인과관계를 의심하는 등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내용을 담았다.
MAHA 보고서는 "어린이 백신 접종이 증가했는데도 백신과 만성질환 간의 연관성, 백신 부작용의 영향, 백신 개발 일정의 이해상충 문제에 관한 과학적 조사가 제한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허위로 밝혀진 1990년대 후반의 조작된 논문에서 비롯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AFP는 지적했다.
백신 회의론자로 평가받는 케네디 장관은 취임 이후 국립보건원(NIH)에 자폐증의 원인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홍역·볼거리·풍진 백신과 자폐증을 거짓으로 연관 지어온 행보의 연장선으로 풀이됐다.
보고서는 또 어린이들에 대한 '과잉 진료'를 비판하며 정신과 약물과 항생제 처방의 급증을 지적하고, 기업의 횡포가 과학 연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며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칭송했다. 케네디는 백악관 행사에서 "이 보고서의 핵심은 상식을 위한 행동 촉구"라고 표현했다.
MAHA 보고서는 미국인들의 건강 악화 배경으로 가공식품과 환경 독소 문제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정작 트럼프 행정부의 관련 정책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라서 정책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케네디는 지난달 식품업계에 합성 식용색소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라고 촉구했는데,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자율에 맡겨 빈축을 샀다.

가공식품 문제 역시 미국 아동의 비만율 증가와 맞물려 초당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안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아동 식이 개선 연구 예산을 삭감했다.
또 이번 보고서는 조리도구와 섬유 등에서 발견되는 영구 화학물질을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바로 지난주 트럼프 행정부는 식수 내 해당 오염물질의 기준치를 완화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대부분의 모유 검체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이 호르몬 교란을 유발한다고 지적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국립공원 등 공공장소에서의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피터 루리 공익과학센터(CSPI) 박사는 "집권 공화당이 푸드스탬프 혜택 삭감, 학교 급식 축소, 수백만 명의 건강보험 박탈, 식품 매개 살모넬라균 감소를 위한 규제안 철회, 식품 검사관 해고에 혈안이 돼 있는데 어떻게 미국인의 식단이 개선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공중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키고 과학계의 합의를 무시하는 보고서의 접근 방식이 공중보건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고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의 확산이라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케네디에게 어린이 보호에 필요한 백신의 "엄격한 안전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아트 캐플런 뉴욕대 그로스먼 의과대학 생명윤리학 교수는 이 보고서를 읽은 뒤 "흥미로운 아이디어도 있지만 괴짜 같은 비주류 의견, 음모론적 헛소리가 모두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